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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토머스 에디슨 생애와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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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은 1847년 오하이오주 밀란에서 태아나 미시간주 포트 휴런에서 자랐습니다.에드슨은 어린 시절

부터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당시의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정규 교육을

받은 것은 3계월 뿐이 었습니다.결혼하기 전에는 교사로 일햇던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덕에 점차 재능을 발휘

하게 되었습니다.21살의 나이에 처음 특허를 신청한 후 그가 193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국에서 1093개의

특허품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1200가지의 특허 출원을 했습니다.전문가들은 에디슨에 2주에 한번꼴로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에드슨 업적은 대략 다음과 같은 8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배터리,전기 빛과

전력,축음기와 녹음기 시멘트,채광 ,영상,전신 그리고 전화기도 있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의 대표적인 발명품을 알아 보겠습니다.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전구 일것 입니다.사실
정확히 이야기하자만 가장 최초로 전구를 발명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제임스 보우먼 린제입니다.
그가 만든 백열전구의 단점을 보완한 전구를 상업화한 사람이 바로 에디슨 입니다.전구 이외에도 에디슨이 
발명한 것들은 많습니다.1899년에는 전기자동차를 위한 알칼리 전지를 만들었습니다.에디슨은 미래 자동차들이
전기로 다닐것으로 예측하고 1899년부터 알칼리 배터리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1900년도에는 미국에서 생상된
4000여대의 자동차 중 28%가 전기로 달렸습니다.그의 목표는 충전 한번으로 160KM를 달리는 배터리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10년후에 가솔린의 대중화로 이 프로젝트를 중단 시켰습니다.하지만 에드슨 발명품은 여기서 버려지지
않고 광산 일꾼들의 헬멧 전등과 기차 시그널 그리고 해상 부이에 사용이 되었습니다.또하나의 발명품은
전기 미터기 입니다.전기가 처음 사용되었을때,가정에서나 밖에 기업들은 도데체 얼마나 많은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에디슨 업적 중 하나로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는 전기 미터기는 1881년에 처음 개발 되었습니다.전기미터기는 전기가 사용될때마다 전해조를 하나씩 갈아주는
방식으로 전력 사용량을 읽게 만들어졌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의 명언중에는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이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이런 말을 남겼듯이
에디슨의 발명에 대한 노력은 엄청 났다고 합니다.그가 남긴 또다른 명언 우리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 1억분의
1도 모른다.라는 말처럼 지금 현재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여러 편리한 물품들 또한 다른 발명가
들의 수없이 많은 실패와 반복 속에서 만들어 진것임을 알고 소중하게 사용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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