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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콜럼버스 아메리카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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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은 이라고 물으면 바로 콜럼버스라고 말할수 있습니다.이 답이 맞냐 안맞냐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우선 콜럼버스 시대의 배경과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우선 십자군 정쟁이 끝난 뒤부터 유럽 사람들은

동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특히 황금을 찾는 것도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것이 그시개의 이슈 였습니다.

콜럼버스도 시대에 발맞추었습니다.더불어 아메리카 신대륙은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벌써 바이킹이 

갔던 곳인데 아날로그 시대 유럽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라 콜럼버스의 향해일지를 그대로 밎었습니다.

콜럼버스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바 출신의 평민이지만 바다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넓은 세상에

대한 꿈을 자연스럽게 키웠습니다.당대 이탈리아 상인들과 동방 사인들의 무역 거래를 본 컬럼버스는 기존의

무역 항로에서 벗어나 동양의 진귀한 물품들을 들여올 새로움 무약 항로를 늘 염두에 두었습니다.콜럼버스

나이 25세 1476년때 탑승한 제노바의 상선이 프랑스와 포르투갈 해적선의 공격을 받아 죽을 고비를 맞이했지만

기적적으로 헤엄쳐 살아나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게됩니다.그후 콜럼버스는 리스본에 있는 동생과 함께 뛰어난

지도 제작자로 명성을 날리게 됬습니다.리스본에서 전통적인 귀족 집안의 포르투갈 관리이자 선장의 젊고

매력적인 딸과 결혼하여 신대륙 발견을 위한 기본준비의 틀을 마련 하게 됩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국의 여왕인 이사벨을 만나게 됩니다.이당시 우럽에는 인도로 가는 길은 험난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아리비아 사막을 지나가는 육로밖에 없어서 가는데만 수개월 걸렸씁니다.당시 유럽에는 인도산

향신료인 후추등이 인기가 많았습니다.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그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해 인도로 가는 새로운

향해로를 찾기위해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콜럼버스는 이사벨여왕을 만나 자신의 제안대로 새로운 해상 무역로를

개척한다면 인도산 향신료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무역에서 얻은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스페인이

유럽 최강국이 될 수 있다고 이사벨 여왕에게 말을합니다.그리하여 콜럼버스와 선원들을 태운 산타마리호는

첫 향해를 시작합니다.하지만 두달을 향해 했지만 인도 땅은 보이지 않았고 콜럼버스는 초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향해일지 날짜를 줄이거나 항로를 거짓으로 기대하며 마치 정상적인 향해중인것처럼 꾸미게

되었습니다.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선원들에게 밤낮으로 술을 먹여 골아 떨어지게 하거나 아예 갑판위로는

올라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그렇게 힙겹게 향해하던 콜럼버스는 70일만에 섬하나를 발견 하게 됩니다.섬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도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실 이곳은 인도가 아니라 중앙 아메리카 비하마제도 였던것입니다.하지만 이사벨 여왕과의 약속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빈손으로 돌아갈수있는 상황이 아니였씁니다.할수없이 유럽에 존재하지 않았던 담배,야자,고구마등

토산물들을 챙겨 7계월만에 스페인으로 돌아옵니다.콜럼버슨느 신하들의 의심을 받았지만 이사벨여왕의 신임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심지어 신항로 개척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독위 지위까지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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