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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태조왕건 고려건국과 삼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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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왕건은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왕건의 아버지인 왕융은 왕건이 태어나기 전에 도선스님이라는 자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길 내년에는 귀한 아들을 낳을것 이라는 예언을 해주었습니다.왕융은 도선스님에게 감사를 전한후에

매일같이 법당에서 왕건의 출산일을 기다리며 기도를 올렸습니다.877년 왕융의 아들이 태어났고 그아이의 성은

왕 이름은 건 왕건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왕건이 태어난 후 17년이 지난 해에 도선대사가 왕건을 찾아와 너는

왕이될 운명이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태조왕건은 20살때 아버지와 함께 해상무역을 통하여 얻은 재력,군사력을

가지고 후고구려의 왕인 궁예를 찾아가서 부하로 임명 받았습니다.이후 왕건은 장수로 임명받았고 후백제와 신라와

전쟁을 통하여 삼국나라중에 가장 많은 영토를 확보했습니다.자연스럽게 왕건은 궁예의 신임을 얻어 계속 성장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궁예는 나라이름을 태봉으로 바꾸고 강력한 1인 왕권에 귀족들과 신하들은 반발했고 궁예는 많은

이들은 처형하고 유배를 보냅니다.궁예는 역모를 걱정하여 의심이 더욱커져 많은 신하들과 부인과 두아들 조차

죽이는 철권을 휘두르게 됩니다.때마침 홍유,복지겸,신숭겸이 왕건에게 모반을 건의 합니다.왕건은 망설였으나

도리어 그의 부인 유씨가 왕건에게 그렇게 할것을 설득 합니다.왕건은 결국 궁예가 머무르는 왕성을 공격합니다.

궁예는 몰래 왕성을 나가 피신하다가 피살 됩니다.궁예를 제거한 왕건은 918년 국호를 고려라 정하고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태조왕건이 고려로 국호를 바꿨을때 후백제와 신라와의 전쟁에서 계속해서 압받을 가했고 신라는 후백제의 공격을
받았는데 고려의 태조왕건이 이를 저지 해주었고 계속되는 후백제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신라는 태조왕건의 밑으로
들어오게 됩니다.후백제의 왕인 견훤은 자신이 아끼던 셋째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지만 첫째 아들이
그를 못마땅하며 결국 아버지인 견훤을 가둬놓는 상태까지 오게 됩니다.결국 셋째아들 금강이는 형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견훤은 3개월 동안 갇혀있다가 탈출을 하여 고려로 귀하하게 됩니다.이때 왕건을 만나게 되는데
왕건에게 자기 자신의 현재 상황을 밝히고 후백제를 공략할수 있는 정보들을 왕권에게 전달 합니다.이때 왕건은
견훤을 형님으로 모시며 극진히 대접을 하였다고 합니다.이러한 태조왕건의 태도에 견훤은 크게 감동하여 후백제를
멸망시키는데에도 큰공을 세우게 됩니다.그만큼 왕건의 성품이 견훤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한것 입니다.또한 후백제의
군사들은 견훤을 보고 군사력이 떨어져서 결국에는 항복을 합니다.왕건의 성품으로 인하여 후백제의 전쟁에서도
손쉽게 이길수 있도록 만든 왕건은 결국 고려를 세우고 삼국통일 까지 이루게 됩니다.

태조왕건은 즉위 직후부터 호족세력을 포섭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그리고 백성들을 위한 애민정신도
대단했습니다.흉년이들면 세금을 감면해주고 곡식을 빌려주는 빈민구제 제도인 흑창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태조왕건은 훈요10조를 반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리고 태조 왕건의 태자 혜종이
즉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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