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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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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찬 장군은 984년 금천,지금의 봉천동에서 삼한벽상공신을 제수받은 군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어릴 때

이름은 은천이였습니다.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지력이 탁월하였으며 98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시랑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34세 였습니다.강감찬 장군이 장원급제를 한 것은 그가 타고난 자질의 우수함도 있었지만

이와 동시에 그가 성장한 유복한 가정환경에 힘입은 바가 많았습니다.그의 관인으로서의 진출은 비교적 늦은

편이였습니다.어느면에서 보면 소년등과 보다는 오히려 이것이 그에게 다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요나라의 1~2차 침입

993년 거란의 성종은 송나라와 고려 사이의 친선 관계를 차단하였습니다.또 고구려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우기면서

옛 고구려의 영토를 달라면서 소손녕을 보내 고려를 침공합니다.서희는 고구려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나라이름을

고겨라고 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요의땅도 다 고려땅이라고 주장합니다.압록강 동쪽의 여진을 내쫒고 옛땅을 

돌려달라고 하였습니다.그러자 그말에 설득된 소손녕은 물러갔고 고려는 서희의 담판 결과로서 강동 6주를 획득

하였습니다.그동안 거란은 999년에 송에 승리를 거두고 1004년 송으로부터 전연의 맹을 얻어내는데 송이 요에

패배하여 연운 16주를 거란에 넘겨주고 요나라 황제로부터 아들 활제에게 책봉을 받기에 이릅니다.송은 요에게

책봉을 받고 신하 노릇을 하게 되어 중국 대륙을 손아귀에 넣게 됩니다.결국 전쟁에서 패한 송나라는 면번 막대한

물품을 거란에게 배상하는 치욕을 당합니다.이에 앞서 고려는 현종이 병을 핑계 삼아 이를 이행하지 않자 거란은

이에 불만은 커져갈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 고려가 얻은 강동6주가 군사적 검점이 되자 거란은 이의 반환을

요구하였고 고려가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1010년 현종 1년 겅조가 목종을 죽이고 현종을 추대하는 정변을 일으키자

성종은 이를 벌한다는 구실로 삼아 거란은 2차 침입을 시작합니다.서경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남하하자 현종은

나주까지 피신을 합니다.거란은 개경을 함락시키기는 했으나 남침하며 모든 성을 정령하지 않고 진군합니다.

고려는 이에 거란과 교섭하여 국왕의 친조를 조건으로 강화를 제안하자 거란군은 하공신 일행을 인질로 잡고서

회군하였습니다.거란군들은 철군 과정에서 남하하면서 점령치 않고 방치하였던 성으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거란군 

1만명이 살상되기도 합니다.큰 패배를 당하며 거란은 압롱강을 건너면서 2차 침공은 끝이 납니다. 


요나라 3차 침입

1018년 요나라는 고려 현종이 친히 입조하지 않은 것과 강동 6주를 돌려주지 않은 것을 구실로 삼아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합니다.이때 서북면 행영 도통사로 있던 강감찬 장군은 상원수가 되어 부원수

강민첨 등과 함께 20만 8천 명을 이끌고 나가 곳곳에서 요나라군을 격파합니다.흥화진 전투에서는 1만2천여 명의

기병을 산골에 매복시키고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동쪽의 냇물을 막았다가 적병이 이르자 막았던 물을

일시에 내려보내는 전술로 혼란에 빠진 요나라 군을 크게 무찔럿습니다.이에 자주와 신은현에서 고려군의 협공

으로 패퇴하는 요나라군을 추격하여 귀주에서 적을 섬멸했는데 이전투가 귀주대텁이라고 합니다.요나라군 10만명중

생존자는 겨우 수천에 불과하였습니다.귀주대첩의 승리로 요나라는 침략 야욕을 포기하게 됩니다.거려와 요나라

사이의 평화적 국교가 성립되었고,고려는 송나라와 정식 외교 관계는 단절하였지만,무역및 문화교류는 계속 

이루어졌습니다.요나라도 송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수준에서 송과도 긴장된 평화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전쟁이후 전란이 수습된 뒤 강감찬 장군은 검교태위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천수현개국남에 봉해지고 식읍

3백 호를 받았으며,추충협모안국공신의 호를 받습니다.1020년에는 특진검교태부 천수현개남에 봉해져 식은 3백

호를 받은 뒤 벼슬에서 물러납니다.그러나 1030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가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현종 사후 사망

합니다.덕종이 즉위하자 개부의동삼사 추충협모안국봉 상공신 특진 검교태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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