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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생애와 발명품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 관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어머니에게 글을 배우고 어린나이에 관청의 노비로 있었습니다.그가 언제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충남 아산에 장영실의 묘가 있다고 합니다.전통적으로 농업국가였던 조선에서는 농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천문학이 매우 중시되었을 때입니다.세종때 이런 관심이 잘 반영되었고 장영실은 천문학관련 여러가지 발명품을 만들게 됩니다.장영실과 세종대왕의 만남은 우리나라 과학발전에시초로 남겨지고 있습니다.장영실이 태종때부터 궁중기술자 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세종이 발탁해서 관직을받고 궁으로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지만 장영실이 두각을 나태낸것은 세종대왕때부터 입니다.세종대왕은 많으 사람이 알다시피 신분의 높고 낮음을 신경 쓰지 않고 나라의 인재를 끌어오는 정책을 펼치..
삼국통일의 주인공 김유신을 알아보자 김유신의 본관은 김해이며 만노군에서 태어났습니다.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12대손이며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인 구해왕의 증손입니다.조부인 김무력은 구해왕의 막내아들로 벼슬이 각간에 이르렀으며,백제의 동북지역을점령해 신주를 설치하고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키시도 했습니다.부친은 소판의 벼슬을 지낸 김서현으로 그도 대량주 도독 등을 지내며 진평왕때에 백제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활약을 했습니다.삼국유사에서는김유신이 일곱 별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 등에 칠성의 무늬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김유신은 수많은 전장에서 싸워 마침내 신라를 최후의 승자로 만드는데 공헌을 했습니다.명실공히 신라의 대영웅으로 한국사에서 왕족이 아님에도 사후 왕의 자리까지 추존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합니다.김유신이 활동한 시기의 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6.25전쟁의 최대 변곡점은 인천상륙 작전이었습니다.김일성의 남침 이후 국군과 미군은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지못한 채 전선은 계속 남쪽으로 밀렸습니다.이렇게 밀려난 곳은 낙동강 전선이었습니다.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도없었기에 국군과 미군이 싸우고 있는 뒤에는 남해 바다가 있었고 앞에서는 어떻게든 8.15일 까지 전쟁을 끝내라며다크치는 길일성의; 독전 명령에 따라 공세를 늦추지 않는 북한군이 있었습니다.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죽는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디.해외 망명정부를 수립 하던지 아니면 남해 바다에 수장될 때까지끝까지 싸우다 죽느냐의 양자 택일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하지만 정부와 국군은 한치에 꺼리낌도 없이 후자를선택 합니다.이때 유엔군 총 사령관이 바로 맥아더 장군이였습니다.맥아더 장군..